“소통을 디자인하는 리더, 퍼실리테이터”는 2012년에 두 명의 국제 공인 퍼실리테이터가 그동안의 활동에서 틈틈이 기록해 놓은 깨알 같은 노하우를 정리한 책입니다.
이 글에서는 책을 읽고 팀에 적용해 보고 싶은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각 내용에 첨부된 이미지는 재구성한 내용에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로 넣은 이미지입니다.
퍼실리테이션이란 무엇인가?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
의 어원은 ‘쉽게 만든다’ 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쉽게 만들까요? 집단 구성원 간의, 혹은 집단 간의 소통과 협력을 쉽게 만드는 것입니다.
퍼실리테이션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시너지가 생기도록 도와주는 행위이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라고 합니다.
왜 퍼실리테이션이 필요할까?
인간 사회에서 소통과 협력은 쉽게 일어나지 않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견, 자기주장, 경쟁, 갈등과 분쟁으로 가득합니다.
회사 내 부서 간의 갈등, 학교 친구들 간의 편 가르기, 가족 간의 오해와 상처…
이런 일들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살기 좋아질까요?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퍼실리테이터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그렇게 합니다.
소통과 협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대화가 전제되어야 하는데요, 그럼 대화란 무엇일까요?
20세기 천재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대화란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의미의 강’과 같은 것이며, 옳고 그름을 다투는 논쟁과는 구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대화란 ‘너와 내가 각자 의미의 시냇물이라고 한다면, 너의 의미와 나의 의미가 만나 더 큰 의미의 강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퍼실리테이션: 함께 참여하게 하라

리더십 강의나 전문 워크숍 프로그램에 주로 활용되던 퍼실리테이션은
사람들의 참여 욕구가 증대되면서 가족회의에서부터 대규모 콘퍼런스까지 매우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는데요.
최근 10년 사이에 참여라는 말이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왜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방식이 중요할까요?
첫째, 서로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둘째, 높은 실행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셋째, 집단 의사결정 방식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조직 전체의 의사 결정 능력이 개발됩니다.
이것은 구성원이 관제탑의 지시만 기다리는 부속품이 아닌,
한 명 한 명이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엄청난 일입니다.
무엇보다 구성원이 일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성과도 최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 활동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죠.)
퍼실리테이션: 사람들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다

일반적인 컨설턴트는 문제를 진단한 후 솔루션을 제시하는 주체가 되는 것에 반해 퍼실리테이터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줄 뿐, 문제 해결의 주체는 구성원들입니다. 전문가 관점에서 50점짜리 아이디어라도 그것을 실행하면 최소한 50점은 되죠, 근데 전문가가 100점짜리 답을 제시해도, 실행하지 않으면 결국 0점인 것입니다. 이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많은 리더들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무엇이 제대로 된 솔루션인가’는 보고서 기준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지는지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고, 결국 자신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검토해서 결론을 도출한 그들의 답이 정답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해답을 주려고 하기보다 그들 스스로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제공하라.
50점짜리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구성원들은 다음에는 60점, 80점짜리 대안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퍼실리테이션: 프로세스 전문가

퍼실리테이터는 참석자들이 효과적인 절차에 따라 효과적으로 논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진행 과정을 기획하고 통제할 뿐, 논의 주제에 대한 의견은 일절 내놓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요.
얼핏 쉬워 보이지만,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사내 퍼실리테이터의 경우, 자기 의견을 개입시키려는 충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콘텐츠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프로세스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세심하고 철저한 기획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요. 그래서 퍼실리테이터의 본질은 ‘프로세스 전문가’입니다.
퍼실리테이션 프로세스 4단계
1. 오프닝
짧은 회의에도 오프닝은 필요하다.
30분의 짧은 워크숍이라도 원활한 참여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촉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복잡한 오프닝을 해야 하는데요, 단순하게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퍼실리테이터 OOO이고 오늘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소개하고 시작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퍼실리테이터들의 경험으로는 이렇게 해서는 30분은커녕, 10분마저도 촉진된 워크숍으로 절대 전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엔터키’를 누르면 정답을 말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죠. 매우 예민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편안하게 이야기할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야기할 맛이 나야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고 틀을 깨는 사고를 입 밖으로 내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워밍업이 필요한 것이죠.

심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하나의 조직이 생성되어 제대로 일을 수행하기까지는 크게 네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 이제 막 조직이 만들어져서 기대와 걱정이 공존하는 형성기
2) 생각과 행동양식 차이에서 갈등을 겪는 혼돈기
3) 공동체로써 규칙을 만드는 규범기를 거쳐야
4) 비로소 팀워크를 성공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성취기에 도달하게 된다고 해요.
워크숍이 조직되면 이와 같은 과정을 똑같이 겪게 되는데요. 퍼실리테이터가 일련의 오프닝을 충실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워크숍이라는 신생 조직을 빨리 성취기로 도달시켜서 아이디어를 발산시키고 수렴하는 본 세션에 참석자들을 몰입시키게 해서, 이 몰입된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것입니다.
퍼실리테이터는 워크숍의 불쾌지수를 최소로 낮추기 위해서 민감한 컨디션 조절자가 되어야 하며,
그 작업은 처음부터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오프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프닝에서 긴장하지 않는 비결
오프닝에서 긴장하지 않는 가장 큰 비결은 가급적 워크숍이든 강의든 프로그램을 내 손으로 직접 짜는 것입니다. 그리고 1시간 30분 전에는 미리 도착해서 좌석 배치, 준비물 확인, 노트북 장비 동작 점검, 방의 온도 체크, 조명의 밝기를 확인합니다. 마치 귀한 손님을 초대한 주인처럼 준비하는 것이죠.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음악을 틀어 놓은 다음, 강의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당일의 세션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준비합니다. 그리고 처음 오프닝 멘트를 결코 애드리브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프닝으로 할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말로 해보고, 그래도 미덥지 않으면 (가족들에게라도) 리허설을 해보세요.

오프닝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라
마지막으로 오프닝에서는 아무리 급해도 각자의 기대 사항을 공유하게 하여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합니다.
2. 아이디어 발산
발산과 수렴의 시간

(오른쪽) https://www.hankyung.com/
음식에도 상극인 음식이 있듯이 생각의 모드에도 상극이 있는데, 바로 발산과 수렴입니다.
혼자서 생각할 때는 대안을 찾다가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수렴해서 즉석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하겠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커뮤니케이션하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발산과 수렴의 프로세스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아직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단계인데, “그건 예전에 해 본 건데?”, “전에 했던 거랑 비슷한 거 아닌가!” 등의 비판과 평가가 나오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참석자는 입을 다물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와 선정은 추후에 이어질 것임을 알려주고, 참석자들에게 계속 ‘발굴의 모드’를 주지시켜줘야 합니다. 생각의 발산과 수렴을 분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시간의 갭을 두는 방법인데요, 8시간이 필요한 세션이라면 첫날 오후 4시간은 생각을 발산하도록 하고, 다음 날 오전 4시간은 수렴의 프로세스에 배정하는 방식입니다.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휴식을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숙려 시간을 갖도록 해서, 참석자들의 시각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는 것이죠.
질문을 잘 하는 방법
책에 나온 실화를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병사들은 전쟁의 후유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의 가정과 일터에 정착하지 못하고, 술과 폭력과 우울증 등으로 많은 병사가 전쟁의 아픔을 이어갔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함을 인식한 미국 정부에서는 병사들을 상담하고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프로젝트를 의뢰받은 조지프 교수는, 그 방법론을 놓고 고민하던 중, 같은 대학의 예술 전공 교수의 조언으로 상담 프로그램의 틀을 짜게 된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따지기 전에 순수하게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을 보고 들었을 때 각자의 마음에 느껴지는 그 감정에 귀 기울여 보고, 그러고 나서 이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할까, 나에게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 작품에 대해서 자신만의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고, 그 작품을 소유하든 안 하든 자신만의 세계로 들여놓게 된다.
조지프 교수는 예술 감상 원리가 철학에서 자신을 찾아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병사들을 상담하게 된다. (이후에 이러한 대화의 원리는 조지프 교수가 시카고 빈민가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NGO 활동을 하면서 퍼실리테이터들에게 전파되었다.)
“왠지 대화가 겉돌고, 깊이 있는 토론이 안 되고 있다면, 퍼실리테이터로서 자신이 참석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유하게 하라
아이디어 발산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그룹 활동은 참석자들을 효과적으로 참여시키고 몰입을 유도하는 매우 좋은 방법인데요, 한 사람도 다른 데 관심을 빼앗기지 않고 모두 주제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명씩 토론을 유도하고, 몰입도가 좋아지면 팀별 소그룹 활동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 그룹에서 토의한 결과를 전체와 공유하는 작업인데요, 전체와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각자가 주제의 일면만 보면서 다른 맥락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그룹 활동은 수행만큼이나 공유도 중요합니다. 공유할 때는, 한 팀씩 발표하면 시간이 길어져 지루해지는데요.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세션 전체의 에너지도 같이 떨어지고, 모두가 발표는 하였으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오른쪽) https://stresscompany.net/
좀 더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다음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첫째, 지루함을 해결하고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진행자가 결과물을 직접 읽어주면서 공유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참석자 스스로 발표하도록 하고, 시간이 길어질 것 같으면 발표 시간에 제한을 두어야 합니다.
둘째, 결과물 자체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도록 과정을 설계해야 합니다. 다양한 그림이 새겨진 이미지 카드를 활용한 토론, 결과물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특정 단어를 응용하여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기 등 방법은 다양합니다. 토론도 결과 공유도 재미있게 됩니다.
셋째, 앞 팀 발표 내용과 중복되는 것을 빼고 발표하라고 지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팀의 발표 내용을 잘 들을 수밖에 없고, 오히려 자기 팀에서 발표할 것을 빼앗겼다거나, 앞 팀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내용이니 꼭 발표하겠다는 식의, 따끈한 경쟁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3. 결론도출
다양한 생각의 색깔들

결론 도출에서는 에드워드 드 보노의 6가지 생각 모자 기법을 활용해보세요. 주제를 가지고 토론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어떤 사람은 긍정적인 이야기부터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이야기부터 꺼내면서 불필요한 감정적 대립에 빠지게 되므로, 토론의 관점을 나눠 놓은 것입니다.
- 화이트: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관점
- 레드: 감정이나 직감을 말하는 관점
- 블랙: 부정적인 측면만을 말하는 관점
- 옐로우: 긍정적인 내용만을 말하는 관점
- 그린: 창의적 아이디어나 대안을 말하는 관점
- 블루: 회의를 진행하고 요약하는 관점
이 기법은 6개의 상상의 모자처럼 6개의 생각의 방향을 상징합니다. 모두가 하나의 관점으로 말할 때, 더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볼 수도 있습니다.
“생각은 인간이 가진 최고의 자산이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술에 절대로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뛰어나지건, 우리는 언제나 더 나아지기를 바라야 한다.” -에드워드 드 보노-
합의의 철학
또 어떤 상황에서는, 결론 도출에서 합의를 이끌어 내 보세요. ‘합의’는 반대를 하는 소수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가 반대하는 이유를 들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찬성하는 다수가 집단 사고에 빠질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입니다. 따라서 중차대한 일일수록 이와 같은 노력을 수반해야 집단지성을 이루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은 수많은 개인들의 협동과 집단적 노력으로 생성되고 공유되는 집합적인 지성을 말한다. 지적 능력의 결과로 얻어진 집단적 능력을 말합니다.)
합의가 협상이나 타협과 다른 점은, 서로 주장하는 대안의 장점을 결합한 제3의 대안을 제시하면 얼마든지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오랜 논의 속에 대안이 가지고 있는 이모저모를 객관적으로 신중하게 뜯어본 후, 마지막 수단으로 다수결에 부치는 ‘반합의semi-consensus
방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주의 생태마을에서는 시멘트로 길을 깔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시멘트의 독성이 땅에 사는 생명들에게 해롭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살다 보니 땅이 풀리는 봄이나 눈, 비가 오고 나면 땅이 질척거려서 다니기 불편했다. 그래서 ‘주요 도로만 시멘트를 깔자’는 안건으로 회의한 결과 그 중간 합의점으로 도로에 자갈길을 까는 것으로 합의했다.
도출을 위한 준비
마지막으로 결론 도출 단계에서는 헬리콥터 리뷰 방식을 통해 결론 도출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헬리콥터 리뷰란 참석자들에게는 휴식과 여유를 주고, 진행자들에게는 최종 점검할 시간을 주는 방식입니다.
시간이 흘러 워크숍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고, 오후 마지막 휴식 시간을 가지고 나면 최종 결론에 들어가야 할 텐데 참석자 한 명 한 명이 몰입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 준비한 일정대로 진행하면 처음 목적했던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인지, 뭔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이럴 때 휴식을 겸하여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게 딱 헬리콥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제 최종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 놓친 게 있을까요? 이대로 진행하면 처음 시작할 때 모두가 공감했던 목표에 다다를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마음을 열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헬리콥터 리뷰에 초청된 참석자들은 솔직한 의견과 제안을 제시합니다. 회의가 진행되면서 참석자들의 의견이나 질문 등에 방어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개방적인 태도로 신뢰를 쌓았다는 기본 전제하에 말입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원래 목적했던 바도 다시 한번 검토해 보고, 아직 남은 여정도 살펴본 다음, 필요하다면 작전을 변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살려야 한다.
간단한 다과와 함께 Tea Break를 준비해 참석자들과 휴식과 교류의 시간을 보내며, 헬리콥터 리뷰를 진행한다. 워크숍 전체 큰 그림을 돌아보고, 기획한 대로 잘 진행됐는지 회고하며, 남은 시간 진행 전략을 공유한다.
퍼실리테이터는 변경된 작전에 따라 재빠르게 진행 준비를 하고, 다시 새로운 여정으로 참석자들을 초대하기 위하여 늘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면서도, 바람의 방향과 하늘을 관찰하며 언제든지 새로운 탐험에 마음을 열어 놓는 진정한 탐험가이어야 한다.
4. 클로징
마무리가 중요하다
오프닝에 기울인 노력의 3분의 1만큼이라도 클로징에 쓴다면, 장담하건대 퍼실리테이션의 효과는 배가 될 것입니다. 교육이든, 워크숍이든, 회의든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클로징에서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시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는가를 참석자들과 함께 검토하고 결정하기
- 왜 시간을 연장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되, 참석자들이 반대할 경우 최소한 사후 조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2) 세션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회고하고 공유하기
- 오늘 세션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 오늘 도출된 내용이 여러분의 기대를 충족시켰습니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오늘 이후에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처음 시작할 때 기대 사항을 공유하는 것에 버금가는 중요한 활동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계획을 실행에 옮기거나,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지속해서 협업하게 될 것이므로 소감 공유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한 공감대 형성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3)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하기
- 퍼실리테이터가 있는 세션의 가장 큰 장점은 명확한 결론과 다음 스텝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 다음에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를 모든 참석자가 기록하고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4) 세션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설문하기
- 참석자들로부터 도출된 내용에 대한 만족도와 진행에 대한 만족도를 구분하여 의견을 확인하는 것은 퍼실리테이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유익한 정보가 된다.
정시 종료
정시 시작만큼 중요한 것이 정시 종료입니다.

퍼실리테이션 실전 스킬
퍼실리테이터로서 알고 있어야 할 7가지 실전 스킬을 소개합니다.
스킬1. 경청하는 테크닉을 연마할 때까지 퍼실리테이션은 금물

말 잘하는 퍼실리테이터보다 말은 어눌해도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아는 퍼실리테이터가 훨씬 좋다. 말을 너무 잘하는, 그래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퍼실리테이터는 조금 위험할 수 있다. 퍼실리테이터의 발언 시간에 퍼실리테이터의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참석자들의 참여도는 저하된다. 말을 아끼고 발언권을 참석자들에게 최대한 넘겨줘야 한다. 이 기본적인 것이 되어있어야 경청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퍼실리테이터는 현재 진행하는 활동에 집중함과 동시에 시간 관리, 이다음 활동에 대한 계획, 듣고 있는 다른 참석자들의 표정이나 분위기도 관찰해야 하는 등 멀티태스킹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경청이 더욱 힘들어진다.
경청을 위한 테크닉으로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
‘ 기술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내가 다시 말하는 것을 뜻하며, 실제 퍼실리테이션에서는 이것 자체만으로도 소통을 촉진시킬 수 있다.
누군가 길고 복잡하게, 혹은 작은 목소리로 얘기해서 전체 참석자가 그 얘기를 잘 듣지 못했다고 판단될 때, “~님께서 하신 말씀은 ~ 해서 ~ 하다는 말씀이시죠?” 하고 큰 목소리로 전체 참석자와 발언자에게 다시 한번 제시해 주면서 확인한다. 그런데, “~님 죄송한데 다시 한번 이야기해 주시겠어요?”라고 하여 발언자가 ‘내 말을 잘 안 듣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하거나, ‘내 이야기가 너무 중구난방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웠나?’라고 좌절하지 않도록 하려면,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을 잘 포착할 의무가 있다.
패러프레이징이 필요한 상황이면 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아, 그러시군요!” 하거나, 다른 참석자에게 발언권을 핑퐁 시켜서 논의를 확대해 갈 수도 있다.
스킬2. 요약은 그냥 줄이는 게 아니죠

3~5분가량 길게 발언한 내용은, 구조화해서, “말씀하신 내용은 첫째는 A이고, 둘째는 B, 마지막으로 셋째는 C이군요” 라도 되짚어주어 참여자들의 집중을 흐리지 않게 한다. 이러한 요약 방식은 복잡한 그룹 커뮤니케이션을 경제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든다.
예를 들어 발언자가 하나가 빠졌다고 지적하면 네 번째만 추가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B가 아니라 D라고 하면 해당 내용만 변경하면 될 것이다. 구조화 외에도 요약에서 중요한 것은, 참석자의 발언을 지나치게 추상화하거나 편집하지 않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참석자가 직접 사용했던 지명, 숫자 등의 표현을 체로 걸러내듯 찾아내서 의미를 다시 살릴 수 있도록 문장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누군가의 이야기가 길어진다 싶으면, 들을 때부터 조각을 내면서 들어보세요. 도대체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운전하며 뉴스를 들을 때도, TV에서 토크쇼를 보면서도, 배우자가 저녁 식탁에서 하는 얘기를 들을 때도 요약, 또 요약해 보시라.
스킬3. 마음을 녹이는 한 마디, “그러시군요”

불교 수행법의 하나인 비파사나 수행에서는 화가 나는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아, 내가 지금 화가 나 있구나’ 하고, 그 감정을 ‘바라 보라’고 한다. ‘비폭력 대화’에서는 숨겨진 욕구를 잘 ‘관찰’하라고 말한다. 저 사람이 화가 난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관찰하고 그 욕구를 알아주라고 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그러시군요…”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반은 풀린 셈이다. 자신에게 특별히 갈등관리나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없다면 “그러시군요~”, “그렇게 생각하셨군요~”라고 한 마디만 해보길 바란다. 마법과도 같다. 단, 어떤 식으로든 조언은 삼가야 하고, 공감은 필수 요건이다.
스킬4. 빅 마우스를 잡아라

회의 내내 한마디도 안 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발언을 독점하거나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더욱더 문제다.
다른 사람들의 참여 의지를 꺾어 놓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흔히 ‘빅마우스’라고 부른다. 이럴 때 발언 횟수나 시간에 제한을 두는 기본 규칙을 정하고 시작할 수 있다. 누군가 기본 규칙을 잊고, 자꾸 발언을 독점한다면 브레인스토밍이 아닌 브레인라이팅으로 조용히 의견을 적어 내게 할 수도 있다.
이 방법은 말을 잘 안 하는 스몰 마우스의 의견을 이끌어 내는 방법으로도 좋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조용히 글만 쓰게 할 수는 없는데, 여전히 빅 마우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면 정중하게 “요점을 포스트잇에 정리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지속되는 빅 마우스의 발언을 퍼실리테이터가 재치 있게 끊고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제지해야 한다.
스킬5. 스몰 마우스의 입을 열게 하라

먼저 조용한 참석자의 종류부터 구분해 보아야 한다.
첫째, 개인의 성향이 내향적이거나 수줍음이 있는 사람들은 듣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듣고서 웬만하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자신을 맞춰주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정서적인 친밀감과 함께 이야기해도 된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필요가 있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아이스브레이킹이 효과적이다.
둘째, 관심이 없는 경우다. 눈을 뜨고 있을 뿐 생각은 다른 데 가 있을 것이다. 직접 이름을 부르며 발언 기회를 주면, 뻔한 대답을 하거나 의견이 없다고 말한다.
셋째, 불만이 있는 경우다.
넷째, 관심도 있고 수줍은 것도 아니고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닌데 활발하게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단지 ‘말로 표현하는 일’에 큰 가치를 두지 않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런 경우 말하는 것보다 쓰는 방법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보통 워크숍이라는 조직이 구성되어서 논의를 막 시작할 때는 모두 경직되어 있을 수 있으니 처음엔 2인 1조 토론으로 시작해서 점차 토론 조의 사람 수를 늘려가거나, 말하는 대신 쓰는 방법으로 브레인라이팅을 겸해서 진행하면 좋다.
스킬6. 참석자와 논쟁하지 말자

퍼실리테이터는 자기 생각을 참석자들에게 주입하는 사람이 아니다. 콘텐츠는 오롯이 참석자들 몫이며 진행 과정만 관장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석자들이 과정에 몰입할 수 있고, 온전히 워크숍의 주인이 되어, 주도적으로 논의를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참석자가 무엇을 물었는데 잘 모르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냥 이렇게 되물어보라.
절대로 참석자와 논쟁하지 말고, 참석자들의 머릿속을 바꾸거나 계몽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않아야 한다.
알고 나면 쉬운 이야기지만 많은 퍼실리테이터가 단골처럼 저지르는 실수이며, 그것도 큰 실수에 속한다.
스킬7. 까다로워 보이는 저 사람, 말을 걸어야 한다.

시작도 하지 않은 시간에, 이 사람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성향이나 생각을 파악하는 것은 진행 중간에 발생할 수도 있는 돌발 상황을 예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전 대화를 통해 오히려 더 든든한 내 편으로 만들 기회이다.
작가의 경험담을 한 가지 소개한다. 한 분이 시작하기 일찍 전부터 와서 팔짱을 끼고 앉아 삐딱한 태도로 나에게 물었다.
“이게 뭐 하는 교육이요?”
“지역 활성화와 관련한 지역주민교육입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이렇게 나눴던 몇 마디 대화는, 이분과 나 사이에서 아이스브레이킹 기능을 했고, 교육 시간에 이분의 노하우와 역량을, 인정해 주면서 진행하자 내 강의에 누구보다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있었다.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게 있는 일이다. 세션이 시작하기 전이든 후든 상관없이, 까다로워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말을 걸기 바란다.
선입견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 확률이 90% 이상임을 보장한다.
마무리
우리는 흔한 회의 한 번, 워크숍 한 번에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반대로 변화의 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차이는 대부분 소통에 참여하는 전체를 얼마나 잘 배려했는지, 그들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전략적으로 준비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실 퍼실리테이션을 디자인하는 일은 주제에 따라서는 검증된 프로세스를 따르거나 논리적인 분석에 따라서 최적의 플로우를 재단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때로는 재치 넘치는 상상력과 장소, 음악, 음식, 은유적 스토리 등에 따라서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정답이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IAF Handbook의 공동 저자인 마이클 윌킨슨이 정리한 5P 원리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퍼실리테이션 디자인을 위한 5P 원리
1. Purpose: 퍼실리테이션의 목적을 명확하게 확인하라.
2. Products: 퍼실리테이션에서 도출해야 할 산출물을 확인하라.
간혹 퍼실리테이션의 목적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명확한 산출물을 이미지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3. Participants: 참석자를 선정하고 그들의 관점을 확인하라.
퍼실리테이션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단계이다. 목표한 산출물을 도출하기 위해 필요한 참석자들을 선정하고, 인원의 규모와 각 참석자가 해당 주제에 대해 어떤 정보와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직,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4. Process: 퍼실리테이션 프로세스를 설계하라.
목표한 산출물을 도출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큰 틀을 구성하고 주어진 시간과 인원 규모, 예상 안건 등을 고려하여 상세한 진행 기법과 시나리오를 짠다.
이 단계가 퍼실리테이터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때이다. 얼마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었는가에 따라서, 때로는 퍼실리테이터의 철학과 스타일에 따라서 다른 시나리오가 나온다.
5. Probable Issue: 돌발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세우라.
어떤 퍼실리테이션도 퍼실리테이터가 세운 정교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참석자들이 어떤 안건을 낼지 대략 로직 트리(Logic tree)로 그려보지만, 늘 예상치 못했던 안건과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모든 돌발 상황에 대책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그러나 퍼실리테이터는 굵직굵직한 ‘만약에’라는 시나리오를 세우고, 플랜 B까지 고려하여 상세하게 준비해야 한다.